계양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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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아TV탈렌트학원
조서연 한국의 샤머니즘이 최근 인연을 통해 알게 된 무속인중에 영이 맑다. 용한 만신이라 말할 수 있는 신통한 점사의 소유자를 꼽으라 한다면 인천 학익동에서 신을 모시고 있는 계양암 조서연 만신을 말하고 싶다. 그의 신당은 인천 학익2동 주민센터 근처에 위치해 있다.

신이 찾아 온다는 것 그리고 찾아온 신은 한번오면 가지 않기에 그 신을 모시고 십수년의 세월을 살아야 했기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만신들의 삶. 인터뷰를 하면서 잠깐 물클한 상념에 잠기기도 했지만 조서연 만신을 대면했을 때 느끼는 인상은 단아했다. 그러나 외모에서 풍기는 그 청초하고 단아한 이면에는 신의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무게감이 다가왔다.

대화하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깨끗하고 수려한 용모에서 풍기는 만신 특유의 너그러운 심성과 이해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무엇이던지 받아 줄 것만 같은 따스한 감성이 있으면서 한편으로 회초리처럼 매서운 엄격함으로 될 것과 안 될 것을 정확히 가려 신의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이 맑고 용하는 입소문이 나있어 많은 사람들이 계양암을 찾아온다고 인터뷰중에 찾아온 어는 신도 한분이 취재진에게 귀뜸을 해준다.

조서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사람들에게 돋보였는데, 나서려고 나서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사람들의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끼는 동아TV탈렌트학원을 나와 연극무대로도 이어졌다. 뿐만 아니었다. 미용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미용실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교제의 폭이 넓었다. 그러다 보니 대외적 사회활동도 많았다. 부녀회장, 기동대 순찰대장, 선거때는 모당의 응원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인생이 일취월장했던 그에게 불현듯 신의 손길이 다가섰다.

왜 인생은 똑바로 가려했던 장애를 만드는지 이것도 신의 뜻이었을까. 그의 내면에는 이상하게 나가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없다고 이야기 했지만 무언가 억누르는 듣 답답했고 몸에서는 이상반응으로 구역질이 돌았다. 풀밭에 있으면 괜찮았고, 가로수 나무에 있으면 좋았다. 몸으로 되게 치일때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무언가에 홀린 듯 저녁에 화장하고 외출옷을 입고 부평 공동묘지에 있었다.

교회에 다녔지만 자꾸 신의 굼을 꾸니 동네 아주머니가 어디가서 점이라도 보자고 했다. 그래서 어느 무속인의 집에 갔는데 동자당에 자두가 놓여있어 자주 먹어도 되냐고 승낙을 받고 자두를 먹고왔다. 왜 그랬는지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던 중 몸이 무겁고 자꾸 까라지는 우울증세까지 겹쳤다. 죽고 싶었다. 이유는 단지 죽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목을 매기도 했다. 그런후 죽고싶은 충동이 또 일었다. 동맥을 끊으려 했지만 남편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한날은 뭐가 언친 것 같아 울컥 피가 나왔다. 무서웠다.



조서연 누워 있으면 집안의 장롱이 무너지고, 창가 옆에서는 검은 그림자가 칼로 그를 찌르려고 서성대는 것 같았고, 형광등이 그의 얼굴에 떨어질 것 같은 현상들이 엄습했다. 당시 큰돈이었는데 점감 50만원을 가지고 남편은 전국 순회를 하며 용하다는 점집은 다 돌아 다녔다. 신병이니 신을 받으라는 답만 받았다. 이상한 것은 그 집에 못마출것 같으면 가기전에 미리 배가 아팠다.

이를 보다못한 어느 만신이 그렇게 돌아다니지 말고 차라리 산에가 실험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계룡산 맨 꼭대기 선녀당에 갔다. 비가 억수같이 왔는데 오방기를 들고 서있었다. 그러자 그에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비가오는데 그의 눈엔 구름이 보이고 무지개 다리가 하늘에 놓여져 있었고, 뭉게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뻥 뚫렸다. 그런데 하얗게 장군옷을 입은 분이 백마를 타고 오셨고, 그 뒤에 군졸들이 하얗게 옷을 입고 뒤 따랐다. 도사할아버지, 산신할아버지, 대신할아버지, 맨 끝에 나이어린 동자를 보았다.

관악산에 갔다. 관악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팔각정에서 맴을 세 번 돌고 비녀를 꽃으신 대신할머니 한분이 오셔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참 우여곡절도 많은 시간들이 자나가는 듯 했다. 그렇다면 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그 해 여름, 감악산에서 굿을 했다. 굿도중에 갑자기 쓰러졌다. 눈동자속에 물사발에 장군이 눈을 감는 모습이 비췄다. 이를 본 남편은 굿을 중단했다. 죽는다고 절벽으로 뛰어내렸는데 별안간 폭포수 물이 그를 껴안았다. 잠깐 사이게 벌어진 일에 남편과 친정어머니의 눈이 휘동그라졌다.

조서연 그런일이 있은 후 이듬해 9월 7일. 인천의 선학굿당에서 내림굿을 했다. 애기를 손에 잡고 대신할머니가 들어오셨다. 높은 산에는 도사할아버지가 오시면서 지팡이를 주며 잘잡고 있으라고 했고, 노란띠를 머리에 찬 장군님, 복건을 쓴 도령이 날아왔고, 복통을 맨 신장할아버지, 칠선녀, 칠성님, 초록색 모자와 옷을 입은 본산장군님등이 차례로 들어오셨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아프던 몸이 아프질 않았다. 마음도 편안했다. 그러나 남편 모르게 신내림을 받다보니 무업 초기에는 남편의 눈을 속여 신당에 출퇴근을 했었다.

그런 세월이 어언 주마등 같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조서연 만신은 신내림 받기까지의 과정이나 신을 받고 난 후 지나친 시간들이 너무도 소중했고 그 단단한 바탕으로 신의 집을 견고히 짓고 있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성무의 과정이란 결코 그냥 얻어지는 법이 아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듯이 그의 지나온 세월의 궤적은 민중생 제도중생의 근본이 되는 진실한 마음이 되었고 어려운 분들이 찾아와 상담하는 진실한 마음의 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그가 모시고 있는 신령님의 영검함으로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들에게 만사형통으로 작용되길 기원하며 한국의 샤머니즘은 또 하나의 우리시대의 무당을 네티즌 여러분에게 추천 드린다.
- 한국의 샤머니즘 인터뷰중에서 -